노병
로데론 전투의 여명에서
실바나스가 텔드랏실을 불태운 후, 얼라이언스는 대군을 모아 로데론으로 진군했다. 여명이 밝아오는 가운데 사울팽은 로데론 성벽 위에서 곧 시작될 전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있는 그에게 한 젊은 트롤이 다가왔다.
제칸:
아... 사울팽님.
사그라들던 화톳불을 다시 키운 제칸은 얼라이언스의 군대를 바라보며 사울팽에게 물었다.
제칸:
얼마나 될까요?
대군주 사울팽:
아주 많겠지.
사울팽은 불타던 텔드랏실을 떠올렸다. 아주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세계수에 살고 있었다. 텔드랏실을 불태우라고 명령한 실바나스에게 사울팽이 말했다.
대군주 사울팽:
이건 명예롭지 못한 일이오!
놈들이 우릴 칠 거요!
얼라이언스 전부가!
서서히 갑옷을 벗고 있는 사울팽에게 제칸이 말했다.
제칸:
제 아버지는 3차 대전쟁 때, 군주님과 함께 싸우셨죠.
제게 얘기해주셨어요.
단칼에 적을 열명씩 쓰러뜨리던 군주님 활약을요.
전쟁은 처음 해 봐요.
뭘 하면 될까요?
대군주 사울팽:
죽지나 마라.
제칸:
네, 물론이죠. 하지만...
목숨을 잃더라도 영광스러운 전투에서 명예롭게 죽겠어요!
명예라는 말을 듣자, 사울팽은 벗고 있던 갑옷을 내동댕이 치며 소리쳤다.
대군주 사울팽:
영광 따윈 없을 거다!
오로지 고통뿐!
사울팽은 품 안에서 호드 문양이 조각된 목걸이를 꺼냈다.
그 목걸이는 노스렌드의 분노의 관문에서 아서스에게 목숨을 잃고 그의 죽음의 기사가 된 사울팽의 아들이 갖고 있던 것이었다. 아들의 얼어붙은 시신에서 사울팽은 목걸이를 찾아냈다.
대군주 사울팽:
넌 전사다운 죽음을 맞이했다...
아들아.
난 이번에도 그러지 못했구나.
사울팽은 아들의 목걸이를 불 속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화톳불 근처의 재로 얼굴에 문양을 그랬다. 제칸이 물었다.
제칸:
뭘 하시게요?
대군주 사울팽:
내 것을 찾으러 간다.
사울팽은 갑옷을 벗고, 횃불과 도끼만을 든 채로 얼라이언스 진영을 향해 나아갔다. 부서진 섬에서 수많은 호드 전사를 잃고 살아남았을 때도 노병은 혼자 군단의 악마들에게 뛰어들어 싸우다가 죽으려고 했었다. 이번에는 호드가 텔드랏실을 불태웠고, 사울팽은 명예를 잃어버렸다. 전사답게 싸우다 죽는 것이 사울팽에게는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는 일이었다.
그런데 죽으러가는 사울팽의 곁에 제칸이 따라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대군주 사울팽:
돌아가.
그러나 제칸은 사울팽의 말을 듣지 않고, 사울팽처럼 갑옷을 벗으며 계속 사울팽을 따라왔다.
대군주 사울팽:
돌아가란 말이다!
살아남아라.
아버지에게 가.
제칸:
돌아갈 수 없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우리에게...
남은 건 호드뿐이에요.
호드라는 말에 사울팽은 폭발했다. 그가 지키려던 명예로운 호드는 텔드랏실과 함께 불타버렸다.
대군주 사울팽:
날... 안다고 했지.
그래?
내가 본 건?
내가 한 짓은?
이만 포기해라.
제칸:
당신처럼?
분노한 사울팽이 제칸의 멱살을 잡았을 때, 해가 떠오르며 호드의 깃발이 로데론 성벽 위에 걸렸다.
호드의 깃발을 본 사울팽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제칸이 목걸이를 꺼냈다.
제칸은 사울팽이 불 속에 버린 아들의 목걸이를 가져온 것이다. 재가 묻어 있는 목걸이를 사울팽에게 돌려주며 제칸이 말했다.
제칸:
살아... 남으셔야죠.
사울팽은 마치 자신의 아들에게 했던 것처럼 목걸이를 꼭 쥔 주먹을 제칸의 가슴 위에 댔다.
대군주 사울팽:
갑옷도 없이?
얼라이언스가 여명과 함께 로데론 성벽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갑옷을 챙긴 사울팽과 제칸은 방어선으로 돌아갔다.
커다란 고함과 함께 사울팽은 호드의 편에서 다시 싸우기 위해 그의 도끼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로데론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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