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설정들

영혼과 스토리의 진화

크라그 2020. 11. 9. 02:00

우리의 세계는 원자에서 시작한다. 원자가 우리 우주의 근원이다. 그렇다면, 판타지 세계에서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와우에서 힘의 근원은 영혼이다. 와우의 모든 힘은 영혼을 사용하고, 영혼은 여러 세계를 넘나 들면서 변화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영혼이 이렇게 분명하게 설정되지는 않았다. 와우는 탄생부터 구조적인 스토리의 결함이 있는데, '악'과 '나스레짐'이다.

와우는 워크래프트 시리즈에서 왔고, 워크래프트 1편과 2편의 악은 다른 세계관과는 약간 달랐다. 워크는 선의 세력인 얼라이언스와 악의 세력인 호드의 전쟁이었다. 하지만, 메뉴얼의 스토리를 보면, 인간 위주의 선 세력에도 배신자와 악인이 있고, 악 세력인 호드에도 종족과 명예를 위해 싸우는 선인이 있었다. 이 차이는 워크래프트3에서 극적인 변화로 한 단계 진화한다. 그 중심은 스랄이었고, 스랄은 악의 세력 사이의 의인의 아들이며, 인간 세력의 악인에 의해 자라서 종족의 구원자가 된다.

선과 악의 변화는 현실적이며, 현대적인 구성이었고, 이 가치의 변화를 통해서 와우의 세계관은 다른 판타지 세계관과 매우 다르게 발전한다. 와우는 형식적인 선악구도를 따르고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선과 악의 경계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각각의 세력은 각각의 목적과 이상을 따라 움직인다.

악의 근원

와우 스토리를 자세히 보지 않은 사용자가 보기에 선과 악의 경계가 지나치게 모호해 보인다. 텍스트를 주의 깊게 보면, 이런 부분은 워크래프트 초기부터 발생한 결함을 수리하기 위해 와우의 작가진은 수년간 아주 조금씩 스토리를 개선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함을 고치려면 '악'을 정의해야 했다. 와우는 '악'이라는 가치를 매우 세분화 했다. 권력, 독재, 야만적인 폭력, 증오와 혐오, 이기심, 편협한 판단, 어쩔 수 없는 정화 등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가치에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대변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켈타스는 동족을 구하려는 왕족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동족을 폭압하는 독재자였다. 이러한 모든 악의 근원은 어둠땅 이전까지 어둠의 티탄, 살게라스였다.

판테온의 위대한 전사 살게라스는 공허를 악으로 보았고, 악에 대응하기 위해 성전을 시작했다. 성전을 결심한 이유는 살게라스가 공허가 어린 동족을 잠식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살게라스는 공허가 모든 현실우주를 집어삼킬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공허로부터 물질우주를 구하기 위한 정화를 시작했고, 불타는 성전이고 선언했다. 성전을 치루는 군대로는 마르둠에 갇힌 악마를 선택했다. 여기서 뒤틀린 황천의 설정이 크게 변경된다. 기존의 황천은 영혼이 끌려가는 곳이었는데, 연대기를 통해서 황천을 아제로스가 있는 물질 우주의 다른 면, 이계로 재설정한 것이다. 황천은 영혼이 심판받고, 정화되며, 다시 태어나는 저승도 아니고, 심판에 대한 징벌과 고문이 있는 지옥의 모습도 아니게 되었다. 황천은 그저 물질우주를 탄생시킨 에너지가 다른 형태로 모여 있는 곳이고, 악마들은 에너지에서 태어난 정령과 흡사한 형식이 되었다.

우주를 구한다는 살게라스의 명분에서 탄생한 성전은 수많은 악을 탄생시켰다. 바로 대표적인 존재가 킬제덴과 아키몬드였다. 드레나이에게 접근한 살게라스는 지식의 추구를 바탕으로 드레나이를 끌어들였는데, 킬제덴과 아키몬드는 진실을 안 후에도 벗어날 수 없었다. 감히 살게라스를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킬제덴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게 되었다. 아서스와 캘타스도 불타는 성전에 의해 악당이 되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최초 설정에서 살게라스가 나스레짐을 타락시켰지만, 여기에는 논리적인 문제가 있다. 그렇게 되려면, 살게라스가 원래 악한 자여야 했다. 동시에 그는 티탄이었다. 티탄은 물질우주를 가꾸는 존재였기 때문에, 판테온이 내부에 악이 내재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살게라스와 판테온이 대립한 이유를 만들기 어렵다. 다른 세계관에서는 신 중에 악신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실제 역사에서 겪는 일이지만, 신학적으로는 이상한 일이다. 신이라는 존재가 불완전하거나, 원래 악하다는 것은 창조물을 창조할 필요 자체가 없다. 그럼에도 창조가 일어난다면, 신은 고통 주기 위한 존재로 창조했다는 결론이 나는데, 실제로 인간의 삶은 고통으로만 가득차 있지 않다. 그래서 신이 처음부터 악하다는 것은 선과 악을 다루는 워크래프트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강력한 전사인 살게라스라도 절대 이길 수 없는 공허라는 적을 설정해 준다. 우직한 전사인 살게라스는 나스레짐이 주는 정보를 너무 쉽게 받아들였고, 직접적인 해결책으로 우주를 불태우기로 한다. 악마를 병사로 사용하는 군단을 조직한 살게라스는 물질우주의 생명을 모두 쓸어버려서 공허가 물질우주에 개입하지 못하게 할 계획을 새웠다. 에덴에 뱀이 있다면, 와우에는 나스레짐이 있다. 하지만 나스레짐은 어떻게 모든 것을 알고, 영혼을 다루는 기술을 알 수 있을까? 다른 게임에서는 그냥 그랬다고 한다. 워크래프트에서도 그냥 그랬다고 했다. 하지만 와우는 좀 더 깊게 들어간다.

나스레짐에 대해서는 게임에서 한 번도 직접적으로 다룬 적이 없다. 확장팩, 군단에서 살게라스는 판테온에게 붙잡혀 갔고, 군단의 시점에서 작가들은 분명한 메시지를 일리단을 통해서 준다. 일리단은 힘든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은 일리단이 속한 사회적 규범과 일치하지 않았다. 그는 배신자이며, 죄인이고 악이 되었지만 그의 방법은 결국 궁극적으로는 선한 결과를 냈다. 성전을 종식시켰고, 살게라스는 수감되었다. 그리고 확장팩, 격전의 아제로스에서 새로운 악이 등장했다. 바로 전쟁이다. 전쟁은 아제로스가 살게라스의 일격으로 죽어가고 있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소모전의 양상을 띄며 지속된다. 전쟁의 진정한 인도자는 실바나스였다.

실바나스는 와우 오리지널부터 오랫동안 의심 받은 캐릭터였지만, 그녀는 호드의 중요한 지도자이었다. 격전의 아제로스를 거치면서 우리는 실바나스가 어떤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암시를 받을 수 있었고, 그 결과는 영혼과 관련이 있었다. 모든 퍼즐이 마쳐지면서, 그녀는 가로쉬처럼 호드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게 되었고, 결국 가로쉬처럼 어떤 힘에 의해 심각하게 비틀리고 말았다. 그녀는 호드와 얼라이언스 모두를 눈 먼 자들이라고 비난하고 사라졌다. 

이제 악의 근원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살게라스일까? 고대신일까? 대답을 얻으려면, 이제 실바나스를 따라 어둠땅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는 나락이 있고, 나락에는 '간수'라는 자가 있다. 실바나스와 무에잘라 같은 존재들은 간수와의 접촉으로 악당이 되었다.

나스레짐과 힘의 영역들

어둠땅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과정에서는 지배의 투구라는 리치왕의 투구가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투구는 나스레짐과 연관되어 있다.

나스레짐은 설정의 약한 고리가 된다. 워크래프트를 아는 사람이라면, 옛날 설정의 나스레짐은 죽음, 룬, 지옥의 영역에 발을 디디고 있다. 나스레짐은 군단의 현장 지휘관이며, 황천의 얼음에 영혼을 가두고, 언데드를 지배하는 투구를 만들며, 영혼을 흡수하는 룬검을 제련한다. 3가지 모두 엄청난 능력이다. 거기에 어둠의 마법을 사용하며, 지옥 에너지의 영역에 근거를 둔다.

오랜 시간에 걸처, 지옥과 공허를 분리해 내고, 그 사이를 영혼에 대한 설정으로 채웠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공허와 지옥에서 죽음을 분리해 냈다. 이 분리 작업을 통해서 불타는 군단이 아제로스를 침공하면서 사용한 죽음의 역병과 죽음의 기사를 별도의 세계인 어둠땅으로 연결시켰다. 이제 죽음의 기사와 불타는 군단의 연관 관계가 매우 약해졌다. 대신 불타는 군단은 언데드 역병을 사용하지 않고, 영혼을 소울 엔진에 집어 넣는 것으로 바뀌었다. 얼음 역시 등장하지 않고, 대신 지옥 수정이 등장한다.

초기 어둠땅은 말 그대로 어두운 영역이었고, 와우의 Shadow는 어둠으로 번역된다. 그리고 어둠의 힘은 공허에서 나온다. 공허는 고대신과 연관되어 있고, 공허를 이용한 마법을 사용하게 한다. 하지만, 이 역시도 빛과 그림자의 관계로 빛의 세력을 자세히 설정하면서 죽음과 공허를 분리시켰다. 지금의 공허는 영혼을 집어삼키지만, 영혼을 사용하여 포세이큰 같은 언데드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설정에서 언데드는 죽은 몸에 영혼이 갇혀 있는 상태, 강령술로 만들어진 괴물로 나뉘었다. 영혼을 분리하는 마법과 의식이 와우 세계관 내에서 계속 발전하면서 영혼을 석상과 무기에 깃들게 하는 마법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죽은 영혼을 이용하여 죽은 신체 가두는 방식의 언데드 괴물이 등장했다. 마지막으로 영혼 그 자체로 만들어진 괴물이 등장했다. 이 괴물은 영혼 융합체라고 불리며, 얼음왕관, 또 다른 드레노어, 블러드 엘프 유산 방어구 퀘스트, 검은떼까마귀 요새에 등장한다.

기존의 서사에서 나스레짐은 많은 빛, 공허, 지옥, 죽음의 영역에 걸쳐 있지만, 그 중에서 특히 죽음과 매우 가깝다. 

영혼과 죽음

현실의 신화를 보면, 지옥은 고통의 장소가 아니다. 죽은 후에 가는 사후세계는 안식과 정화의 공간이었다. 벌을 받기도 하지만, 벌은 교화의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기독교의 등장으로 연옥이 등장하면서 신을 배신한 절대악이 갇히는 곳이 되었다. 가장 깊은 곳에 루시퍼가 갇혀 있고, 죄인들은 루시퍼를 향해서 끊임없이 낙하한다. 그리고 심판의 나팔이 울릴 때까지 나오지 못한다. 

와우는 기독교 문화권을 넘어서 폭넓은 내세관을 바탕으로 어둠땅을 설계하고 인류의 문화적인 부분을 융합시켜서 4개의 영역을 만들어 냈다. 분류와 심판, 질서, 투쟁, 순환의 영역이 나누어져 있고, 각각의 특징적인 부분을 와우의 세계관에 맞게 조정했다. 이제 어둠땅은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다양성을 충분히 전달하는 공간이 되었다. 각 종족과 문화에서 가는 절대적인 죽음의 공간으로 에메랄드 악몽에서 죽은 우르속이 결국 완전한 죽음을 겪는 과정을 미디어 믹스에서 볼 수 있다. 죽음의 세계에서도 그 세계의 규칙에 따른 존재의 소멸이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후세계와 다른 의미라는 암시가 주어진다.

그리고 와우의 사후세계는 영혼에서 에너지 부분인 아니마, 령이 순환하면서 유지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영혼이 나락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리고 이 결속은 실바나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실바나스는 간수의 의지대로 움직였고, 결과적으로 4차 대전쟁, 격전의 아제로스를 통해 죽은 영혼들이 모두 간수에게 가면서 실바나스의 힘이 리치왕, 볼바르를 압도할 정도로 강해졌다. 이전 확장팩, 리치왕의 분노에서 리치왕 아서스를 피해서 겨우 도망치는 것이 한계였다.

나스레짐의 설정 구멍도 나락의 간수를 통해서 해결되었다. 나스레짐이 영혼에 대한 폭넓은 기술을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계략에 의해서 간수의 지식이 나스레짐을 통해 아제로스로 흘러든 것이다. 미디어 믹스, 사후세계 우서편을 통해서 서리한에 씌여진 룬 문자가 영혼과 관련된 것이면서 간수와 관계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맵에서도 나락에 가면 서리한에 씌인 것과 비슷한 문자들이 나락에 있다. 나스레짐이 에덴의 뱀 같은 부분도 간수의 존재를 설정하면서 개선되었다.

진정한 악의 근원, 간수

와우가 최종보스를 다루는 기술은 진화의 끝을 보인다. 초기 확장팩 패키지를 보면, 최종 보스가 표지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 전통은 판다리아에서 바뀌는데, 판다리아 이후는 확장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종족이나 인물이 표지에 등장한다. 그리고 어둠땅에서는 파괴된 장막이 표시된다. 여러 확장팩을 거치면서, 와우는 단순한 힘의 우열이나, 인지도를 벗어나서 더 큰 세계의 윤곽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이제는 간수가 어둠땅의 최종보스로 표현하면서 시작한다. 간수는 그 자신이 수감자이면서 다른 영혼을 지배하는 존재로 보여진다. 그리고 다른 고대의 존재들보다 더 악하고, 교활한 존재로 묘사된다. 그는 와우 우주에서 모든 영역과 존재들이 순환을 이용하고 있는 근본적인 힘을 지배하려고 하고 있으며, 령 가뭄을 촉발시켜 균형과 조화를 모조리 파괴해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살게라스, 킬제덴, 아서스, 데스윙 등의 악당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다. 이들은 한 때 선의와 정의를 추구하거나 세상을 보호하려고 하다가, 와우 우주의 잔혹한 환경의 앞에서 부러지고, 타락하게 되었다. 간수는 이런 관점에서 우주의 잔혹환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는 존재이다.

와우의 스토리는 유일무이하다.

와우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게임인데, 이 게임의 스토리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의 수는 매우 적다. 많은 사람들이 와우의 스토리를 아예 모르거나, 폄하하거나, 비난한다. 그러나 와우의 스토리 매우 대중적이면서도, 깊고, 유사하면서도 개성적이다. 거기에는 세상의 가치를 전이시키도 하고, 역전시키기도 하지만, 결과는 항상 긍정적이다. 그런 면에서 급진적으로 보이지만, 매우 보수적인 색채를 띄고 있다.

별로 칭찬 받지도 못하는 스토리가 왜 이렇게 복잡한지에 대해서 오래 생각해보았다.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지만, 와우는 스토리와 게임 플레이가 매우 밀접하다. 와우의 기술은 스토리를 기반하고 있으며, 기술을 사용하는 직업 역시 스토리에 기반하고 있다. 스토리는 환경을 만들고, 게임의 방향성을 유지하며, 사용자의 성장에 따라 그에 맞는 정의관과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고지식하지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와우고, 그것이 내가 와우 스토리를 계속해서 보는 것일 수 있다.

요즘은 격전의 아제로스 스토리를 정리하고 있다. 군단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스토리이고, 스크린샷 용량이 10기가를 넘는다. 이제는 좀 더 효율적인 방향으로 스토리를 정리해보고 있다.